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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봉수 열사의 삶

  ◆ 1967년 4월 전남 무안 출생
◆ 1986년 2월 목포 덕인고등학교 졸업
◆ 1990년 10월 현대 자동차 입사 (의장 2부)
◆ 1991년 소위원 활동
◆ 1992년 2월 성과분배투쟁 관련으로 해고
◆ 1993년 1월 원직 복직
◆1994년 의장2부 소위원회 부의장, 대의원 당선
◆ 1995년 2월 의장2부 마르샤 투입 관련 회사측의 합의사항 불이행에 맞서 라인정지건으로 두번째 해고
◆ 1995년 5월 12일 공동소위원연합 2기 출범식 참석을 위해 정문 진입시 경비들의 폭력적인 저지에 항거하며본관정문 앞에서 분신
◆ 1995년 6월 13일 대구 동산병원에서 31일간 사투끝에 운명양산 솥발산 공원 묘역에 안장
 
 
▒ 양봉수 열사의 삶과 죽음 ▒

양봉수 동지는 강직한 품성으로, 동료와 노동조합에 대해 헌신적으로 활동해왔다. ‘91년 말 노조의 성과분배 요구투쟁에 회사측은 노조 없애기 작전으로 맞섰고, 이 과정에서 그는 1차 부당해고 되었다가 93년에 복직되었다.

복직 후 노동조합 대의원에 당선된 그는 작업강도 조정을 위해 같은 사업부 대의원들과 함께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당시 회사측은 신차를 생산현장에 투입하면서 작업강도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고, 여기에 반대하는 대의원사이에 협상이 계속되어 ‘신차 투입은 대의원들과 합의한 후 실시한다’고 약속하였다.
하지만 회사측은 일방적으로 생산현장에 신차를 투입하였고, 양봉수 동지는 담당 대의원으로서 회사측의 노사합의 파기에 강력히 항의하며, 신차를 투입한 생산 라인을 잠시 중단시켰다. 이를 이유로 그는 해고당하였고, 경남지부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하였다. 회사측은 법적인 소송에 계류 중일 때는 조합원이 아니라 볼 수 없다는 단체협약에도 불구하고, 대의원 자격으로 노사협상장에 들어와 있는 그를 경비 20여명을 동원하여 정문 밖에 내던지는 폭력을 행사하고, 정문출입을 저지하였다.

95년 5월12일, 동지는 그날도 공동소위원회 연합 발대식에 참여하기 위해 동료 해고자 4명과 함께 회사 앞에 갔으나 출입을 저지당하였다. 법과 단체협약마저 무시하고, 계속되는 회사측의 부당노동행위에 항의하기 위해 온몸에 신나를 붓고 “내 몸에 손대지 말라”고 외치며 정문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경비들은 이를 무시하고 집단으로 저지하였다. 이런 극한적인 상황에서 동지의 몸에 불이 붙게 되었다.

병상에서도 동지는 “ 나는 죽으려고 하지 않았다. 살고 싶다. 현장조합원을 사랑한다. 노동조합을 사랑한다. 동지들을 믿습니다. 다시 돌아가 함께 하겠습니다.”며 투쟁의 의지로 살고자 했으나 끝내 소생하지 못하고 스물 아홉의 삶을 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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