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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호 열사의 삶

  ◆ 1962년 3월 1일 출생
◆ 1981년 우석고등학교 졸업
◆ 1986년 11월 21일 현대자동차 입사
◆ 1989년 소위원 가입
◆ 1990년 4·28 연대투쟁시 선봉대 활동
◆ 1991년 소위원 활동, 노민추 사업부, 3대 집행부 정책연구부장, 교양지 "단결과 전진" 편집위원
◆ 1992년 1월 21일 경찰침투 대비 바리케이트 설치 중 차량사고로 해성병원 입원
◆ 1993년 7월 1일 오후 9시 26분경 운명
◆ 1993년 7월 5일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장으로 장례 양산 솥발산 공원 묘역에 안장
 
 
▒ 서영호 열사의 삶과 죽음 ▒

서영호 동지는 91년 3대 집행부 정책연구부장으로 활동하였다. 91년 12월말 성과분배정의실현 상여금 투쟁을 벌이고 있던 현대노동자를 정권과 현대재벌은 공권력으로 짓누르려 하였고, 여기에 맞추어 여론에서는 경찰투입이 임박했음을 앞 다투어 보도하고 있었다.

12월의 매서운 추위 속에서 투쟁의 파고는 다소 경직되었으나, 상용 5공장 조합원들은 최후의 한사람까지 작업장을 사수한다는 결의로 뭉쳐있었다. 서영호 동지도 정문을 사수하는 책임자로서 조합원들과 함께 경계근무를 하며 현장을 지키고 있었다.

92년 1월19일 공권력 투입설이 여론을 통하여 선전되면서 긴장감이 가중되기 시작했고, 당시 현장에는 500여명의 사수대만 남아있었으나 1만2천의 경찰병력을 동원해 회사의 담벽을 둘러싸고 있었다. 급박한 상황에서 서영호 동지는 즉각 바리케이트를 구축하라는 명령을 하달 받고 현장에서 지휘를 하고 있었다.
그런 도중에 차량 바리케이트를 치기 위해 소속 조합원이 운전하던 브레이크와 전조등이 작동하지 않는 불량 차량이 동지와 충돌하게 되었다. 칠흑 같은 밤에 전방을 확인할 수 없는 문제의 차량을 이동운전하다 생긴 사고였다. 동지는 즉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의식불명인 상태로 520여일을 투병하다 끝내 1993년 7월1일 운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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