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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사정신계승 창작문학작(시,생활글,소설)

제     목  양봉수 열사여! 끝내 사르소서.
글 쓴 이  강성신 작 성 시 각  2006-07-04 오전 7:5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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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봉수 열사 첫 번째 추모시입니다.

양봉수 열사여! 끝내 사르소서.
-강성신

“엄마, 집에 가고 싶어요.”
“엄마, 집에 가고 싶어요.”
피 떨리는 외침을 뒤로 한 채 가셨습니다.
끝내 살아남은 자의 가슴, 가슴에
분노와 한, 그리고 부끄러움을 남긴 채 가셨습니다.

남쪽 땅,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지리산을 가르는 88고속도로를 타고
대한민국의 근대화, 세계화의 상징, 태화강까지 왔습니다.
현대공화국 울산까지 왔습니다.
작고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꿈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름때 찌든 목장갑 끼고
콘베이어 밸트에 임팩트 소음으로 빛나는 청춘을
값싼 노동력과 노동탄압으로
저 더러운 자본가 놈들이 꿈을 짓밟을 때
투쟁으로 일어섰습니다.
투쟁과 투쟁 속에 해고,
해고 속에 또다시 투쟁과 뜨거운 동지애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살아온
아! 살아 움직이며 실천하는 양심의 노동자로
깃발은 바람이 불지 않으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찢어지고 갈라져도 바람이 휘몰아치면
깃발은 눈, 비가 쏟아져도 온몸으로 펄럭거립니다.
또다시 투쟁 속에 해고

“내 몸에 손대지 마라! 손대면 불을 붙이겠다.”
그러나, 그러나 그놈들은 저 더러운 자본가새끼들의
종이였습니다. 종보다 더 더러운 마름이었습니다.
집단폭행 오직 힘뿐이었습니다.

동지여! 양봉수열사여!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인간이다.”
온몸을 바둑판처럼 칼질해놓은 33일간의 피토하는 사투 속에서도
동지는, 열사께서는
“나는 3만 조합원을 사랑합니다.”
“빨리 해복되어 3만 조합원 동지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3만 조합원 동지들의 건승을 빕니다.”
“3만 조합원을 사랑합니다.”
“동지들을 믿습니다.”
“다시 돌아가 함께 하겠습니다.”

동지여! 양봉수열사여!
끝내, 끝내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셨습니다.
동지의 뜻 하나도 이룬 것 없이 커다란 한으로 보내셨습니다.
아니, 아니 3만 조합원은 결코 열사를 보내지 않았습니다.
열사의 분신을 모욕하는 어용집행부 속에서도
3만 조합원은 하나가 되어
양정벌 지축을 흔드는 분노의 함성과
끝없는 노동자의 물줄기로 양정벌을 울린 촛불집회
그리고 문민정부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폭력경찰의 침탈에도 동지들은 웃었습니다.
구속되어서도, 길거리를 헤매는 수배 속에서도, 징계의 칼날에도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 되어
하나보다 더 큰 하나가 되어 양봉수열사의 뜻을 따르려 합니다.
열사의 피눈물 흐르며 토한 분노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을 안고
“노동탄압 박살” “민주노조 건설”
기필코, 기필코 이루어내고야 말겠습니다.
가슴, 가슴에 열사의 한을 심겠습니다.

열사여! 양봉수 열사여! 열사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겠습니다.
“엄마 집에 가고 싶어요.”
“엄마 집에 가고 싶어요.”
“엄마 집에 가고 싶어요.”
3만 조합원이 열사의 형제가 되겠습니다.
끝내는, 끝내는 모든 노동자의 가슴에 살아남으소서.
살아남은 자들의 가슴, 가슴에 영원히 살아남으소서.
나부터 열사를 가슴에 안고 깃발 펄럭이며
저 거짓된 문민정부와 더러운 자본가 놈들의
칼바람에 당당히 맞서겠습니다.

“노동탄압 분쇄” “민주노조 건설”
열사여! 양봉수 열사여! 끝내 사르소서.
양봉수 노동열사여!

- 동지들께서 다시 한번 열사를 느꼈으면 합니다.
2006년 7월 4일 새벽 2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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